어벤져스

영화/감상 2012. 4. 29. 02:10 |



2008년. 로버트 다우니 Jr.의 토니 스타크가 첫 선을 보인 <아이언맨>의 여흥이 가시기도 전에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다. 바로 마블 스튜디오의 "어벤져스 프로젝트". <인크레더블 헐크> 까지 공개되었던 당시 <아이언맨2> <토르> <캡틴 아메리카: 퍼스트 어벤져>를 차례로 제작하고 그리고 그 넷이 함께 등장하는 "어벤져스"를 만들겠다는 거대한 계획이었다. 


<아이언맨>이 워낙 잘 만들어졌고, 비록 흥행이 좀 아쉬워서 덜 회자되었지만 <인크레더블 헐크>도 괜찮은 평가를 받았기에 다가올 어벤져스에 대한 기대는 높아져만 갔다. 그런데 <아이언맨2>가 떡밥만 잔뜩 뿌리며 작품 자체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 영화가 되어버려 슬슬 기대감 만큼이나 걱정도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토르>와 <퍼스트 어벤져>도 재밌게 보긴 했지만 어벤져스를 위한 준비작업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괜찮았던 정도이지 <아이언맨>에서 느꼈던 그런 재미를 느끼진 못했다. 그래서 어벤져스는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다 필요없고 그냥 잔뜩 나와서 때려부수는 장면만 봐도 만족스럽겠지'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튼 시간은 흘러 영화는 완성이 되었는데 일단 예고편이 너무도 잘 만들어졌다. 그리고 시사회 평들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국내외의 평가가 거의 만장일치로 좋다는 평으로 나왔다. 혹자는 심지어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급이라고도 말을 했다. 그리고 (아마도) 전세계 최초로 일반 개봉이 된 25일 저녁 '걸작 히어로 무비'를 봤다.


상영관을 추천하자면... 좀 비싸긴 하지만 왕십리 IMAX. 그것만이 정답이다;;



* 매우 중요한 스포일러가 있음.








개봉 전 가장 걱정스러웠던 점은 역시 주요 캐릭터가 너무 많다는 점이었다. 일단 개별 영화가 개봉 된 네 영웅에 블랙 위도우와 호크 아이까지 총 6명이 어벤져스 멤버로 나오고, 쉴드의 국장인 닉 퓨리나 (결국 큰 역할은 없었지만) 마리아 힐도 등장하기에 과연 한 편의 영화 시간에 이들의 이야기를 잘 버무릴 수 있을지가 걱정되긴 했다. 하지만 조스 웨던 감독은 이러한 다양한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무리없이 잘 엮었으며 진행 또한 매우 매끄러웠다. 각각의 캐릭터들의 등장 씬 부터 마지막 크레딧이 나오기까지 튀지 않고 전개된다. 


앞서 '걸작 히어로 무비' 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어벤져스>는 또 다른 걸작인 <다크나이트>와는 완전히 반대편에 서 있다. <다크나이트>가 '히어로 무비가 이렇게도 만들어질 수 있구나' 라는 놀라움을 가져다 주었다면, 이 영화는 우리가 '히어로 무비'라고 말하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에 가장 적합하면서도 재미있게 만들어졌다. 이야기는 복잡하지 않으며 무겁지도 않지만 기승전결을 확실히 갖추고 시각적으로 즐길거리를 이야기에 잘 어울리게 극대화했다. 


<어벤져스>가 재미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액션"과 "유머"이다. 사실상 이야기 자체가 주는 즐거움은 크지않다. (그러고보면 이야기 자체에서 즐거움 느낄 수 있는 블록버스터는 그리 많지않다.) 액션이야 당연히 기대했던 부분이지만, 조스 웨던 감독이 던지는 유머는 상영시간 내내 마지막 클라이막스 전투에서 까지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준다. 2시간20분이라는 상영시간 동안 최소 다섯 번은 관객들 모두가 빵 터졌으니까 대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간단히 생각나는 것만 정리해봐도

- 12%

- 10달러

- 애꾸 닉퓨리는 어떻게 왼쪽을 보는가?

- 근무시간에 갤러그 하는거 아님.

- "의붓" 동생...

- 경찰아저씨 미국 대장이 시키면 그냥 들으세요...

- 레골라스 드립

- 헐크에게 맞아서 날아가는 토르

- 내동댕이 쳐지는 로키

- 명대사 : "아! 깜짝이야!"

이 정도라고나 할까. 이러한 유머들이 잊을만 하면 한 번씩 터져준다.


액션씬을 포함한 시각효과 또한 매우 만족스럽다. 초반 토르와 아이언맨의 싸움도 그렇고, 하늘로 떠오르는 기지의 위엄이라던가, 엔진 재점화 장면 등 클라이막스로 가기 전까지 적당하게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나와준다. 특히 맨하탄에서 펼쳐지는 마지막 외계인들과의 단체전은 상당히 긴 시간을 여섯 주인공들을 적절한 비중으로 나누어 화려하게 보여준다. 그 장면 만으로도 일반 상영의 두 배에 달하는 아이맥스3D 영화 표 값은 충분히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도심의 하늘에 포탈이 열리고 외계인이 침공해 전투를 하는 장면을 보니 자연스레 <트랜스포머3>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마이클 베이 감독은 이제 영화를 그만 만드는게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또한 각각의 캐릭터 전부가 소외되지 않고 골고루 역할을 한다. 사실 영화에 캐릭터가 많아지면 몇 몇 인물들은 소외되거나 왜 나왔는지 모르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모든 주요 캐릭터가 자신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또한 그들 각자의 이야기가 뭉쳐져서 큰 줄기를 만든다.


이 시리즈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일등 공신인 로버트 다우니 Jr.의 아이언맨은 역시나 명불허전이다. 때때로 백치미가 심하게 보이는 토르나 투철한 정의감으로 가득 찬 스티브가 있어 토니의 말장난은 더욱 빛을 발한다. 캐릭터 특성상 역시 화려하고 멋진 장면들의 지분을 많이 소유하고있다. (쓸데없이) 걸어가면서 아이언맨 수트를 벗는 장면과 Mark.7을 입는 장면이 특히나 기억에 남는다. 캡틴과의 콜라보레이션도!



토르는 사실 걱정이 좀 됐었다. <토르>의 마지막에 아스가르드로 돌아간 것으로 모자라 스스로 무지개다리(바이프로스트)까지 부숴버렸으니 얘를 어떻게 다시 데리고 내려올지가 의문이었는데... 그냥 지구로 데리고왔다. 로키의 입을 빌어 '오딘이 힘을 써서' 가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토르가 지구로 다시 오기엔 충분한 상황이라 무리없이 납득이 되었다. 아무래도 악역인 로키가 "의붓" 동생이기 때문에 전체 스토리 전개에 매우 중요한 캐릭터였으며 망치들고 날아다니며 잘 싸운다.



캡틴 아메리카는 사실 다른 세 캐릭터와는 달리 화려한 능력은 없다. 그래서 영화에서도 마지막 싸움에선 날아다니며 파괴하고 다니는 다른 영웅들과 달리 지상에서 사람들을 구한다거나 하는 임무가 더 많았다. 하지만 역시 우리 미국대장의 존재 이유는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리더쉽'이다. 가만히 보면 다른 캐릭터들은 다들 리더가 되기엔 결격사유가 있다. 토니는... 일단 나르시즘인데다 너무 자유분방하다. 토르는 지구인이 아니니까 제외시키고 헐크는... 자기도 확실히 제어가 안되는 것 처럼 보인다. 블랙 위도우나 호크 아이는 스파이/저격수의 롤을 맡고 있으며 그 자신들의 과거도 아직 떨치지 못했다. 결국 이런 다양한 성격을 지닌 인물들을 하나로 묶어 지시할 수 있는 것은 가장 정석적인 성격의 캡틴 뿐이고, 영화는 이를 잘 표현했다.



헐크는 배우가 바뀌어서 상당히 불만이었던 캐릭터이다. <인크레더블 헐크>에서 에드워드 노튼이 공부만 할 것 같은 브루스 배너를 참 잘 표현했었는데 외모 자체에서부터 너무 다른 마크 러팔로가 헐크 역을 맡아 매우 아쉬웠었다. 하지만 마크 러팔로는 그 자신의 브루스 배너를 잘 만들었다. 돈 치들이 테렌스 하워드가 연기했던 로드 중령을 너무 이질적으로 바꾸어버렸었다면 마크 러팔로의 경우는 인물의 성격은 어느정도 유지되면서도 어벤져스 영화에 잘 맞는 모습을 보여줬다. 사실 어떤 경우에도 동일 인물을 다른 사람이 연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노튼보다 낫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일단 바뀐 상태라는 것을 감안하면 가장 좋은 모습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호크 아이의 역할이 이렇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하지만 덕분에 훨씬 더 많은 분량을 차지했으며 로마노프와의 대결로 액션씬의 비중도 가져갔다. 이렇게 호크 아이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블랙 위도우와 함께 소외된 캐릭터가 될 수도 있었는데 조스 웨던 감독과 작가진의 선택이 탁월했다. 맨하탄 전투에서도 활을 사용하는 다양한 모습을 멋있게 보여준다.



블랙 위도우는 일단 처음부터 가벼운 액션을 보여준다. 마지막엔 외계인들의 비행성까지 빼앗아타는 모습으로 존재 가치를 보여준다. 게다가 어벤져스의 홍일점! 앞서 말한 것 처럼 호크 아이와 적절하게 엮여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리고 로키! 톰 히들스톤의 로키는 비열한 듯 하면서도 불쌍해 보이는 그런 묘한 악역이다. 형인 토르를 조금 겁내는 것 같기도 하면서도 계획을 잘 세워서 움직인다. 물론 그게 제대로 되었다면 로키가 이겼겠지만 그럴리가 없다. 악역이니까. 토르를 다시 지구로 오게 하고, 외계인들이 지구로 오는 통로를 열어주며 캡틴의 정의에 배치되는 그런 모습으로 어벤져스 캐릭터들을 뭉치게 만들어주는 완벽한(?) 악역이 되었다. 그런데 막상 뭔가 포스를 보여준 장면은 없는 듯... <토르> 에서도 상당히 안쓰러웠는데 마지막에 토르에게 잡혀가는 모습은 말안듣는 동생이 힘 쎈 형에게 걸려서 집으로 끌려가는 모습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과감하게 아군 비행기에다 바주카를 날려버리는 닉 퓨리와, 기지에서 서 있는 것 만으로도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주시는 마리아 힐도 나름의 역할을 했다. 다만 마리아 힐의 경우 사실상 특별한 역할은 없었는데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에서 지속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마지막으로 콜슨 요원. 아아 콜슨 요원이 죽다니... 이제 쉴드의 현장 업무는 누가 이끌어나간단 말인가! 사실 누군가가 죽을 것이라고는 정말 예상을 못했었다. 하지만... 죽었다는건 닉 퓨리의 말로만 들었으니 그냥 안죽었을거라고 생각해야겠다... 토니와 투닥거리는 콜슨을 다시 볼 수 있길...




물론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초반 토르vs아이언맨 씬에서 3D를 너무 의식한 것인지 인물들을 너무 작게 보일 정도로 풀샷을 잡은 경우가 있었는데 시야 범위가 너무 급격하게 움직여서 눈에 잘 들어오지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액션씬들은 무난하게 잘 나왔으니 약간 아쉬운 점 정도일 뿐이다. 

중반의 헐크의 변신과 마지막 전투의 헐크의 변신의 차이를 아무 설명없이 넘어가버린 부분도 아쉽다. 기지에서의 변신이 진짜 브루스 배너 박사의 기분이 그래서 그렇게 난동을 피운 것이거나, 혹은 자의에 의한 변신과 타의에 의한 변신이 차이가 난다거나 둘 중 한 가지로 설명할 수 있지않을까 생각된다. 아무래도 앞으로도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려면 후자의 경우가 더 좋을 듯 하다.

페퍼 포츠역의 기네스 펠트로가 제법 오래 나와서 좋았지만 제인 포스터 역의 나탈리 포트만은 이미지로만 등장해서 아쉬웠다. <토르2>의 제작 상태로 볼 때 앞으로 시리즈에서 영영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아쉽다. 워 머신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는 점도 약간 아쉬웠다. 

하지만 이런 아쉬움들은 영화 전체의 완성도에 비하면 매우 작은 것들이다.




이렇게 완성도 높은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역시 무려 다섯편이나 되는 전 작품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기에 앞으로 나올 작품들도 더욱 기대할 수 있다. 개별의 시리즈들과 <어벤져스> 시리즈를 모순없이 계속 만들어내기가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처럼만 만들어나간다면 앞으로도 쭉 좋은 작품들이 만들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판권 문제 때문에 함께 할 수 없는 스파이더맨과 엑스맨들, 판타스틱4 등 등이 아쉽기만하다.


아마도 다음 타자는 <아이언맨3> - <토르2>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데 영웅들의 멋진 이야기를 앞으로도 즐길 수 있길 기대해본다. 

(그러니까 빨리 빨리 좀 만들어라;;;)



* 엔딩 크레딧에 나오는 유인원 닮은 녀석은 "타노스"라고 한다. 얘도 아마 행성 파괴급 캐릭터인 듯...

* 그런데 F22 출격하면 외계인 정도는 발라버릴 수 있을 듯-_-;;

* 앞서 <다크나이트>와 비교를 했는데 사실 <어벤져스>가 '걸작 히어로 무비' 라면 <다크나이트>는 그냥 걸작이다. 뭐 그렇다는 이야기... 상영 중의 몰입도와 즐거움, 장기적인 만족도를 함께 고려하면

다크나이트 > 엑스맨: 퍼스터 클래스 >= 어벤져스 정도 일 듯.

* 그러고보니 <킹 메이커>가 너무 좋아서 글을 쓰다 말았는데 어벤져스가 기억을 덮어버렸다;; 뭐 아직 라이언 고슬링의 마지막 모습에서 온 여운이 남아있으니 얼른 써야하는데 포스팅 에너지(?)를 다 소비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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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orsch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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