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쉽

영화/감상 2012. 4. 15. 22:55 |





먼저 쓴소리를 좀 하자면, 미국 국내에서만 개봉시킬 영화가 아니라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영화이기에 절대로 나와서는 안 될 장면이 초반에 좀 등장한다. 바로 "욱일승천기". 아마도 욱일승천기가 아시아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알았다면 안 썼겠지만, 그 부분은 제작사나 감독이나 좀 더 신경을 썼어야했다. 몇 장면 등장하지 않음에도 영화 초반이 심히 불쾌했었다.



하스브로社의 동명의 보드게임을 '원작'으로 하는 SF 영화이다. 사실 "원작"이라는 말도 웃긴데 국내 포스터에는 패기넘치게도 아무런 설명없이 "<트랜스포머>의 하스브로 원작" 이라는 광고문구를 넣어서 영화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아는 사람들은 실소를 금할 수 없었지만,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어차피 자세히 설명 못할거라면 흥미라도 유발시키려는 목적으로는 잘 만들어진 카피인 듯도 하다. 물론 마음에 들진 않지만.



보드게임 배틀쉽과 영화 배틀쉽.


오른 쪽은 배틀쉽 보드게임의 한 종류이며 게임 방식은 간단하다. 두 명이 함께 하는 게임으로 서로의 진영을 볼 수 없는 상태에서 전함을 위치시킨 후 추측으로 좌표에 공격을 가해 상대 진영의 배를 먼저 모두 파괴시키면 이기는 규칙을 가지고있다.


처음에 이 영화의 소식을 들었을 때, 저 게임의 이름을 빌려와봤자 실제 게임을 떠올리게 할 만한 부분은 넣을 수 없을테고 그저 화려한 전투를 보여줄텐데 왜 하스브로가 엄청난 금액을 투자해가며 영화를 제작하는지 의문이 들었었다. (물론 블록버스터에 큰 금액을 투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하스브로는 어디까지나 장난감 회사이고, 그 자신의 장난감 이름을 걸었다면 그에 따른 홍보 효과 등의 부수적인 효과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 장난감이 가진 성격을 영화속에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표현했다. 보드게임과 거의 유사하게 진행되는 부분은 영화 중간의 작은 부분 뿐이지만 외계인과 레이더의 교란이라는 설정으로 무리없이 흥미있는 장면으로 만들어냈다. 실제로 영화를 보면서 보드게임이 떠올랐고, 끝나고나서 보드게임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으니 (영화가 흥행만 된다면) 하스브로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될 듯 하다. 




화려한 볼거리.


2억불로 추정되는 막대한 예산이 투자된 영화 답게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소금쟁이를 모티브로 했다는 외계함선들은 이젠 더 좋아질 경지가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인 CG의 힘으로 멋지게 그려졌다. 헤일로의 강화수트도 생각이 나고 아이언맨도 생각이 나는 외계인들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소금쟁이 세 대의 모습도 자세히 보면 각기 개성이 있으며, 외계인들의 수트도 색이나 모양 등에서 조금씩 다르게 표현한 것도 매우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역시 이 영화의 백미는 함포사격을 포함한 함대의 전투이다. 구축함과 소금쟁이의 전투, 외계인들의 선진(?)기술이 담긴 무기들, 거대 전함(Battleship)인 미주리호의 드리프트 까지 2시간10분동안 지루할 틈 없는 화려함을 선사한다. '난 스토리엔 크게 신경쓰지않아. 화려하면 그저 좋아.' 라고 하는 사람들에겐 더없이 좋을 영화이다.




스토리? 그런거 없다.


이 영화는 취향에 따라 갈릴 수 밖에 없는데, 가장 큰 이유는 사실 딱히 스토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워낙에 단순한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는 탓에 개연성이 없다거나 모순된다거나 하는 부분들은 없다. 무리하게 스토리를 넣다가 개연성을 상실하면 감상 자체에 방해가 되기도 하는데 (최근의 <타이탄의 분노>에서의 하데스의 심경변화 등...) 그럴 바에는 차라리 이 영화처럼 개연성이 없을 부분 자체를 만들지않는 것이 좋다. 모든 영화가 <다크나이트> 같을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스토리가 정말로 없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라서 영화 속에서 어느 정도의 이야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에겐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닌 영화이다. 


사실 진주만 근처의 태평양에서 '미국'과 '일본'이 함께 힘을 모아 적을 무찌르고, 최후의 병기가 그 '미주리호' 라는 것을 보면 그들 스스로는 나름 의미도 담은 듯 하지만 우리한텐 그저 볼거리일 뿐... (일본의 항복문서 조인이 미주리호에서 이루어졌다.)


영화의 진행에서 의아한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첨단 기술로만 봤을 때 마음만 먹으면 지구도 금방 정복할 기세인 외계인 및 외계함선이 선제공격은 절대 하지않으며 턴방식으로 공격을 해 주시는 자비를 배푸는 것이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선발대로 온 그들이 군대가 아니고, 본 행성에 신호를 보내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 일단 신호를 보내는 것이 최 우선 과제라면, 지구의 군사력이 얼마나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섣부른 선제공격은 안하는 것이 좋으니까. 아무튼 공격 의사 없는 민간인들은 공격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의외로 착할지도... (홍콩이 파괴된건 지구에서 쏘아올린 우주쓰레기 때문이다;;;)

외계인들이 왜 왔는지는 직접적으로 설명해주진 않지만 알렉스 하퍼의 눈에 잠시 비친 이미지를 보면 자신들의 행성이 거의 파괴되어 지구로 오려는 목적에 선발대를 보내 본 것이라는 설명이 가장 타당해보인다.




배우들.


<존 카터>와 <배틀쉽>에 연속으로 출연한 테일러 키취는 개인적으로 버지니아 보다는 하퍼가 더 맞는 옷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존 카터도 충분히 잘 어울렸지만, 자유분방함에 돌아이 기질도 좀 가진 (포텐셜만큼은 넘치는) 해군장교역에 딱이었다. 홍보에서 전면에 등장하진 않지만 주연급 배우인 아사노 타다노부의 연기 역시 좋으며 테일러 키취와의 호흡도 잘 맞았다. 스텔란 스카스가드의 아들인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모범생 해군장교인 형의 역할을 잘 맡아주었으며, 브룩클린 데커나 리하나의 연기도 부족해보이는 부분은 없었다. 총을 들고있는 리하나의 모습은 생각보다 훨씬 잘 어울렸고. 물론 이 영화에서 배우들이 감정선을 드러내며 감탄할만한 연기를 보여줄 장면은 없다.

많은 시간 등장하진 않지만 리암 니슨의 포스넘치는 "니가 타면 비행기 출격시키마" 라는 대사가 매우 멋있었다.




나 개인적으로는 적어도 극장에 앉아서 보는 시간 동안 얻은 재미로는 최근 1년간 봤던 영화들 중에서 최고로 꼽을만한 영화였다. 물론 이야기로서의 영화의 존재가치를 생각하면 '가치가 없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지만 애초에 볼거리가 목적인 영화가 아니었던가. 블록버스터라는 것이 너무 볼거리 위주로만 치우치는 것도 안좋은 현상이긴 하지만 가끔 이렇게 뇌를 비우고 눈과 귀가 즐거운 영화들이 나와주는 것도 좋지않은가. 제목 바꿔도 좋으니까 과학자가 말한 것 처럼 5만대 쯤 침공해서 지구의 군사력이 얼마나 강한지도 속편에서 보여줫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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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orsch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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