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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게임

영화/감상 2011. 12. 26. 01:57 |

내가 처음으로 좋아했던 야구 선수는 "박충식" 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부터 야구를 보기 시작했는데, 집이 경상북도였던 난 자연스럽게 삼성을 응원했었다. 정확히 야구를 언제부터 봤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가 확실히 기억하는 첫 경기는 1993년의 한국시리즈 3차전이다. 한국시리즈에서 두 번이나 패했던 해태와의 대결이라거나, 1,2차전을 나란히 1승씩 가져가서 시리즈 전적이 1:1이었다거나, 그런 내용들은 사실 잘 기억이 안난다. 지금에서야 기록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알고있지만.
내 기억 속에 각인된 것은 "박충식" 이라는 이름 세 글자였다. 그 날 박충식 선수는 15회까지 홀로 마운드를 지켰고 181개의 공을 던졌다. 결과는 2:2 무승부. 야구에 대해서 거의 아는 바 없던 어린 나에게도 박충식이라는 투수는 위대해 보였고, 점수 한 점을 더 뽑아주지 못하는 타자들이 너무도 야속했다. 나는 그렇게 한 선수의 팬이 되어 야구를 보기 시작했다.




미국, 일본에 비한다면 짧은 역사이지만 그래도 30년이 다 되어가는 한국 프로야구에는 많은 전설들이 있다. 그 전설들 중에서도 최동원과 선동렬은 위대한 선수들이다. 영화 <퍼펙트 게임>은 이 둘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영화는 1987년 5월 16일에 있었던 사직에서의 롯데와 해태의 경기를 소재로한다. 당대 최고의 투수였던 최동원 선수와 최고의 선수가 될 선동렬 선수의 대결은 총 세 차례가 있었는데 이 날의 경기가 그 세 번째의 대결이었다. 1986년에 있었던 이전 두 번의 대결은 서로 1승씩을 가져간 상태였다. 류현진vs윤석민vs김광현이라던가, 프리메라리가 엘-클라시코에서의 호날두vs메시라던가, 조코비치 시대 이전의 페더러vs나달이라던가... 이러한 최고들의 대결은 언제나 관심의 대상이다. 최동원vs선동열. 난 최동원 선수의 경기를 한 번도 보지못했고 국내에서의 선동열 선수의 경기에 대한 기억도 별로 없지만 그들의 대결이 어떤 의미인지는 간접적으로 충분히 상상할 수가 있었다. 그 둘은 결국 15회까지나 되는 경기 끝에 2대2로 비겼고 두 선수의 전적은 1승1무1패로 영원히 무승부로 남았다. 바로 이 역사적인 경기를 영화는 그리고 있다.

일단 야구를 깊이 좋아하는 팬이라면 충분히 즐길 수 있을 만큼 잘 만들어졌다. 게다가 롯데나 해태(KIA)의 팬이라면 금상첨화. 다만 야구를 좋아하지 않거나, 가볍게 즐기는 팬이라면 영화에서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배경 분위기에 대한 공감을 하지 못한다면 이야기 자체가 지루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영화 자체로 봤을 때 재미있는 영화라고 말하긴 힘들다고 생각한다.) 

야구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면, 영화는 흥미있게 잘 만들어졌다. 진부한 구도이지만 스포츠 세계에서 항상 나오는 구도인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자 vs 정점을 향해 올라오는 자'를 잘 표현했으며, 극 중 캐릭터의 성격 또한 잘 보여준다. 특히 경기 장면을 참 잘 만들었다고 생각하는데 15이닝에 이르는 두 투수의 대결을 전혀 지루하지 않고 현장감이 느껴지도록 잘 표현했다. 결과를 알고 있는 경기의 이야기를 보면서도 긴장감이 생겼으니까. 무엇보다도 최동원 선수를 연기한 조승우와 선동열 선수를 연기한 양동근의 연기가 매우 좋았다. 특히 조승우... 
극 중의 주요 캐릭터인 김용철(조진웅)과 김일권(최민철) 선수가 중간중간 많은 재미를 줬으며 가상의 캐릭터인 박만수(마동석)가 무게를 잡아주는 감동적인 역할을 했다.

다만 개인적으로 실화를 이야기를 하면서 픽션이 너무 많이 가미가 된 것은 아쉽다. 기본적으로 두 선수의 대결이 펼쳐졌던 경기의 양상 자체를 사실과 다르게 만들었다. 점수가 나는 순서 자체도 틀리며 점수를 내는 과정도 틀리다. 픽션을 가미한 것은 좋지만 적어도 경기는 사실 그대로 그렸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가상의 선수인 마동석 선수의 이야기 또한 너무 지나쳤다는 생각이 든다. 감동이 충분히 전해질만한 이야기가 만들어졌지만 그것이 좀 과해서 일순간 무게가 두 주인공에게서 옮겨와버리기도 했다. 사실 영화를 보던 중에는 충분히 감동적이었고 그것이 감독의 의도였다면 성공했지만, 영화를 보고나서 돌이켜보면 최동원vs선동열의 경기를 그린 영화였기에 그러한 감동이 꼭 필요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픽션 몇 가지를 짚어보면,
첫째, 주요 캐릭터인 김용철 선수는 최동원 선수와 경남고 동기로 나오지만 사실은 경남고가 아닌 부산상고를 나왔으며 최동원 선수보다 1년 선배이다. 그리고 동점 적시타를 치지 않았다.
둘째, 박만수라는 캐릭터는 완전한 가상의 인물이다. 당연히 동점 홈런도 없었다.
셋째, 앞서 말한 것 처럼 경기 기록 자체가 실제 경기와 다르다. 해태vs롯데의 점수가 "1:0 > 2:1 > 2:2"가 되었는데 실제로는 "0:2 > 1:2 > 2:2"가 되었다. 9회초에 동점이 된 것은 맞지만 2사후 홈런은 아니고 1사 2루 상황에서의 적시 2루타에 의해 동점이 되었다.

또 한가지, 김영민과 최정원이 연기한 두 기자(특히 최정원)가 대체 왜 나온건지 모르겠다는 평들이 많은데, 난 오히려 최정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최정원이 이쁘니까... 는 아니고... 김서형이라는 캐릭터는 스포츠신문 기자이지만 원래 야구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 그런 사람이 두 선수의 경기를 보면서 눈물까지 고여가며 감탄을하게 된다. 김서형이 경기를 보면서 느꼈을 마음이 내가 박충식 선수의 투구를 보면서 느꼈던 마음과 비슷하게 여겨졌다. 투혼이라고 부를 수 있을 두 선수의 모습이 야구와 거리가 먼 사람들도 야구에 빠져들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점을 잘 표현했다는 이야기이다. 다만, 앞서 말한 것 처럼 영화 자체가 야구를 잘 모르면 그다지 재미를 느끼기 힘들 듯 하다는 점에서 이러한 김서형 기자의 모습이 큰 효과를 주지는 못할 듯 하다.



1987년 5월 16일. 최동원 선수는 60명의 타자를 상대하며 209개의 공을 던졌고 선동열 선수는 56명의 타자를 상대로 232개의 공을 던졌다. 현대 야구에서 선발 투수의 한계 투구수는 100개 내외이다. 그리고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최소한 4일 이상은 휴식을 가지게 하며 가능하다면 5일의 휴식을 주려고 한다. 그런데 이 두 투수는 200개가 넘는 공을 던졌다. 그것도 서로와의 대결에서. 

얼마 전 오승환 선수의 직구에 대한 분석을 하는 방송에서 최동원 감독님의 인터뷰가 나온적이 있다. 사진과 영상 기록에서 보던 모습과 다르게 말라 보이는 모습에, 살이 많이 빠지셨구나 하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 때 이미 몸이 많이 안좋은 상태였던 듯 했다. 그리고 얼마 후 돌아가셨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영화를 보는 내내 조승우의 얼굴에서 마지막으로 방송에 나왔던 인터뷰 모습이 겹쳐졌다. 김서형 기자의 질문에 "최동원이 게임은 최동원이가 던집니더. 상대가 누구든 최동원이 경기는 최동원이가 던진다고. 이기든 지든!!" 이라고 외치던 조승우의 모습이 나올 때엔 주책맞게 눈물이 날 뻔 하기도 했다. 최동원 감독님께서 살아서 이 영화를 보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엔딩크레딧이 끝나는 순간까지도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문자 그대로의 "페펙트 게임 Perfect Game"은 야구 기록을 지칭하는 한 가지의 용어로 "한 경기에서 선발 투수가 단 한 타자도 1루에 내보내지 않고 마지막까지 던져 이긴 시합"을 말한다. 30년 가까이 된 한국 프로야구사에서는 아직 한 번도 나오지 않은 어려운 기록이다. 하지만 이날의 두 선수의 경기는,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함께 경기를 한 모든 선수들에게, 그리고 두 선수 자신들에게도 사전적 의미와는 다른 의미의 "퍼펙트 게임"이 아니었을까. 1993년의 박충식 선수의 경기가 내 마음 속의 "퍼펙트 게임"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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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orsch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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