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olet 우정호

일상 2012. 8. 25. 13: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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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에서 테란과 경기를 하는 KT의 프로토스 선수를 봤다. KT의 팬이라 당연히 프로토스 선수를 응원했는데 정말 인간적으로 너무 못했다. 못한다 해도 내가 그 보다 잘 할 수 는 없겠지만 '적어도 저 상황에서는' 내가 마우스를 잡아도 저것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속에서 '저런 것도 프로게이머라고...' 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저 그렇게 사라질 게이머 중 하나가 될 줄 알았다.


Violet[Name] 우정호


얼마 전 프로야구 중계를 보다가 들었던 말 중에 "지금까지 수많은 불펜의 최동원, 불펜의 선동렬이 있었지 않습니까?" 라는 말을 들었다. 즉 실전에서 자기 능력을 얼마나 보일 수 있느냐도 스포츠 선수의 중요한 능력 중의 하나이다. 감독이 미치지 않고서야 연습상황에서도 좋지 못한 선수를 실전에 내보내진 않을테니 말이다. 


박정석과 강민으로 대표되던 KT의 프로토스라인은 이미 예전의 KT가 아니었다. 'T1저그', '웅진테란'과 함께 '케텝토스'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의 수준이었으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 KT프로토스의 유망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지기 시작했다. 사실 KT는 많은 경우 완성된 선수들을 영입했던 팀이었는데 새로운 프로토스 라인은 팀 유망주들로부터 완성이 되었다. 그 중심에는, 불과 몇 달 전 프로게이머라고 부를 수나 있을지 의심했던 그 선수가 있었다. 이영호라는 대선수 하나에 의존하던 팀의 숨통이 트이고, 그에 따른 시너지 효과로 팀은 승승장구한다. 결국 오랜 숙원이던 팀단위 리그인 프로리그 파이널(포스트시즌)에서 우승을 한다. 7전4선승으로 치뤄진 09-10시즌 결승에서 KT프로토스는 3승을 거두었고 첫 경기에서의 기선제압을 바로 우정호가 해냈다.


새로 맞이한 10-11 시즌에서 우정호는 여전히 팀의 주축으로 활약을 했다. 웃음에 가식이 보이지 않던 선수였고 비하인드 영상 등에서 보이는 평소의 모습은 모두와 잘 지낼 것 같은 그런 착한 사람이었다.


2011년 1월 27일. 급성 백혈병으로 입원을 하게 된다. 전문 지식이 없어서 잘은 모르지만 림프구성 백혈병이라고 했다. 일어날 수 있길 바랐고 또 그럴것이라 생각했지만 불안함 또한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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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동아리 활동은 내 인생에서의 매우 큰 경험이자 자산이었다. 그 동아리의 1년 후배가 하나 있었는데, 참으로 순수하고 착한 녀석이었다. '순박하다'는 표현이 지나치게 잘 어울렸던 녀석이다. 백혈병이었다. 알게 된 시점이 내가 입대를 하기 전이었는지 입대를 한 후였는지 확실히 기억나진 않지만 제대를 하고 5일 후 먼저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처음에 그 말을 다른 후배를 통해 들었을 땐, 내가 제대하기 전 떠난 것을 이제 알려주는 것인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 그 날 하늘로 떠난 것이었다. 난 왜 병원을 한 번 찾아가보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왔고 그건 지금도 후회로 남아있다. 

그 후배는 (수술 여부는 확실치 않지만) 중간에 많이 호전되어 일상 생활이 가능할 정도가 되었고 일본 여행도 다녀오고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상태는 어느 순간 다시 급격히 나빠졌고 결국은 돌아오지 못하는 길을 떠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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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호 선수가 입원을 하고 몇 달.. 거의 1년이 지나고, 골수이식 수술도 받고 게임도 즐길 정도로 상태가 호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스타2 래더 점수가 좋다는 소식도 돌았다. 엔트리에서도 빼지 않고 늘 같이 있는 것이라 말했던 KT팀, 감독 및 선수들의 바람과 팬들의 응원이 힘이 되었던 것인가 생각을 했다. 그리고 곧 털고 일어날거라고 생각했다.


2012년 여름. 급하게 혈액을 구한다는 글을 봤다. 각종 커뮤니티 및 게임 관련 사이트에 글이 올라오고, 스타리그를 아끼는 가수 박완규씨도 직접 나섰다. 혈액형이 달라 응할 수는 없었지만 마음으로나마 많은 분들이 도와주길 바랐다. 후배 생각이 나면서 힘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크게 나면서도 제발 다시 호전되길 바랐다. 하지만 많은 팬들과 관계자들의 응원에도 불구하고 2012년 8월 23일, 너무나도 아까운 나이에 모든 것을 놓고 하늘로 떠났다.


아침에 일어나서 부고 소식을 보고 참 많이 슬펐다. 1988년 9월 30일생. 만 23세. 우정호 선수를 많이 응원했던 팬이기에 안타까움이 컸고, 거기에 먼저 보낸 후배의 생각이 겹쳐져서 안타까움은 배가됐다. 둘 다 비슷한 나이에 같은 병으로 떠나갔다. 아직 제대로 펴보지도 못한 나이에...


언젠가 늘 괜찮다고 하던 우정호 선수가 진심이 느껴질 정도로 힘듦을 토로했던 트윗이 생각이 났다.

힘들었던 것 잊고, 프로게이머로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멋지게 선수생활을 했던 기억만 가지고 편히 쉬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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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orsch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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