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인도 배수지도 그다지 딱히 팬은 아니라서 이 영화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떤 대상에 대해 남들의 말에 귀기울이는편은 아닌데 영화로 넘어오면 확실히 팔랑귀가 되는 듯 하다. 사람들이 호평이 이어지니 왠지 꼭 봐야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참 잘 봤다는 생각이 든다.
90년대 중반의 풋풋한 대학 신입생 승민과 서연, 그리고 15년 후 30대 중반이 되어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승민과 서연 두 시점의 이야기를 교차해서 보여주며 과거에 대한 아련한 향수와 첫사랑이라는 추억을 떠올리게 해 준다. 나보다 6,7년 정도는 빠른 시절의 이야기라서 직접적인 공감을 할 수는 없었다. 지금에와서야 6,7년이 그리 큰 차이는 아니지만 7년차이나는 사람이 대학교 1학년이었을 때 난 초딩이었으니까. 그래도 두 주인공의 과거의 모습은 핸드폰과 인터넷이 없다는 것만 빼면 요즘과도 별로 다르지 않기에 상당히 이입해서 볼 수가 있었다. 게다가 이젠 두 주인공의 현재의 모습도 감정이입이 충분히 될 상황이어서 영화에 좀 더 빠져들 수 있었다. 그 점이 좀 슬프기도 했지만.
영화는 특별한 사건 없이도 승민과 서연의 이야기를 잘 표현한다. 승민의 시각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승민의 감정은 직접적으로, 서연의 감정은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그렇기에 실제 서연의 진심은 추측은 가능해도 영화의 마지막에 도달하기 전까지 확신은 할 수가 없다. 두 주인공 사이에서의 균형은 매우 잘 잡혀있으며 결말도 최선의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결말을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는 결말 때문에 첫사랑을 더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한 장면만 빼면;;)
배우들의 연기는 몰입에 방해되진 않을 정도로 무난하다. 물론 이제훈의 연기는 정말 좋으며, 엄태웅은 <시라노 연애 조작단>에서도 좋았지만 이러한 분위기의 영화에 참 잘 어울리는 배우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한가인이랑 배수지는... 뭐 몰입에 방해는 안됐으니 됐고...
이 네 명의 인물 이외에 많은 분량이 아니지만 등장하는 조연들이 영화에 큰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특히 승민의 동네친구인 재수생 납뜩이(조정석)는 말이건 행동이건 표현 하나하나가 모두 예술이다. 스크린에는 처음 선보인 이 배우는 뮤지컬 쪽에서는 남우조연상(2009년 : 스프링 어웨이크닝)을 수상한적도 있는 배우였다. 이승기/하지원 주연의 "더킹 투하츠"라는 드라마에 현재 주연급으로 출연중인데 사진을 보면 조금 놀랍다. 아마 이 드라마 보던 사람들도 영화를 보면서 동일인물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았을 듯...
전체적으로 매우 만족스러운 영화였고, 최근 봤던 한국영화 중에서도 최고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한국영화를 몇 편 안봤지만;;; 첫사랑을 경험한 시간이 조금은 지난 사람들 모두에게 추천하고싶은 영화. (단, 너무 아픈 기억을 가진 사람은 오히려 보고나서 안좋을 수 있다.)
너무 개인적인 기억들에 대한 것들이라서 언제 지워버릴지 모르는 이야기.
나에게 이 영화는 잔잔하게 그려진 '판타지'였다.
도발적인(?) 영화의 광고 카피에도 등장하는 '첫사랑'이라는 말은 어느 정도의 삶을 살아온 사람들 대부분에겐 아련한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 시기가 언제가 되었든 말 그대로 '첫 번째' 사랑이기에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상황에서 다가온 감정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러한 첫사랑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하고 끝이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이 영화에서 말하고 있는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한 순수했던 시절의 사랑이라는 의미로 다가왔다.
영화에 대해 들은 많은 이야기들과는 달리 영화를 보는 중에는 나의 예전의 이야기들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집으로 돌아와서 침대에 누우니까 과거의 기억들이 조금씩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게다가 바로 다음날 어린 시절 한 때 정말로 많이 좋아했었던 아이의 결혼식이 있어서 그런지 기분이 참 묘하기도 했다.
나의 첫사랑은 고등학교 2학년 때이다. 사실 그 이전에도 어느정도 좋아했던 사람이 있긴 했지만 멋대로 스스로 규정한 첫사랑의 이유는 당시의 좋아했던, 그리고 설레였던 감정이 기억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물론 확실히 할 것은 '기억'이 남아있다는 것이지 '감정'이 남아있다는 것은 아니다. 첫사랑이기도 하면서 앞뒤 생각안하고 이런 저런 수식없이 좋아한다고 말을 했었던 유일한 대상이기도 하다. 물론 결과는 보기좋게 실패! 그런데 재밌는건 그렇게나 깔끔한 결과를 맞이하고나니 오히려 깔끔하게 정리가 되었었다. 덕분에 지금까지도 몇 안되는 편한 '이성' 친구로 잘 지내고 있다.
그렇기에 영화를 보고나서야 떠올랐던 기억들은 첫사랑 보다는 제대로 결론을 보지못했던 두어차례의 이야기들이었다. 오랜 시간을 함께 봐왔으면서도 진심을 말해볼 기회도 없이 결국 어느 순간 끝나버렸던 인연들. 그렇게 결국 처리하지 못했던 감정들은 생각처럼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하긴, 이런 기억들이 쉽게 사라진다면 '첫사랑'이라는 말의 의미도 지금같진 않을 것이다. 이렇게 의도치않게 끝나버린 감정들을 가끔은 지금이라도 풀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 라는 말은 당연히 아니고, '너를 정말로 좋아햇었다.' 라는 말을 하고싶을 때가 있다는 의미이다. 그렇게 하면 과거는 온전한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실상 그런 기회는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 과동기라던가 동아리 친구 이런 경우 처럼 다른사람을 매개로 가끔은 연락이 가능한 경우라면 이야기가 좀 달라지겠지만, 승민과 서연처럼 사실상 둘 사이의 연결고리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경우에는 다시 만단다는 것 자체가 쉽지않은 일이니까. 그렇기에 현실은 <건축학개론> 보다는 <초속5센티미터>처럼 될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크다. 그렇기에 앞에서 나에게 이 영화는 '판타지'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래도 잊었던, 혹은 숨겨뒀던 과거의 기억을 다시 꺼내본 것이 나쁘진 않았다. 나도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결국은 처리못하고 묻어두었던 감정의 기억을 털어버리고싶다는 생각이 잠시 들기도 했지만 승민과 서연이 그러했듯 기억은 추억으로 남겨둠으로서 더 좋을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과거보다는 역시 지금이 훨씬 중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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